[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연진(33) 씨는 재택근무를 시작한 올해 초부터 ‘층간 담배 냄새’에 골치가 아프다. 화장실과 베란다를 타고 들어오는 냄새가 아이의 방까지 퍼져 관리사무소에 알렸지만 “화장실의 경우 몇 층에서 핀 것인지 찾기 어렵다”, “할 수 있는 것은 안내방송과 공고문이다”는 답변을 받았다. 주기적으로 안내 방송을 하고 게시판에 실내 흡연 자제 요청 글도 붙여봤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대기 중인 한 시민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대기 중인 한 시민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이 씨는 “담배 냄새가 들어올 때 베란다에서 ‘피우지 마세요’라고 소리를 쳐도 묵묵부답이고, 아래·윗집에 가봐도 본인들은 다 아니라고 한다”며 “알아보니 화장실이나 베란다 등은 사적 공간으로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없다고 하는데, 해결 방법이 없어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흡연 관련 민원 코로나 이전보다 19.2% 증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실내 생활이 늘어나면서 층간소음 갈등과 함께 공동주택 내 흡연 분쟁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가해자를 특정하기 비교적 쉬운 층간소음과는 달리 층간 흡연은 정확한 발생 세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 해결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앞서 정부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내부 흡연을 막는 정책을 잇따라 도입했지만, 실효성은 미미한 수준으로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규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일 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층간 담배 냄새(간접흡연) 피해 민원은 2,844건으로 2019년 2,386건보다 19.2% 늘었다. 이날 본지가 9월 한 달간 한 포털사이트 카페에 올라온 글을 살펴본 결과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두는데 담배 냄새가 올라와서 빨래에 냄새가 밴다”,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으로 아이들이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아 더욱 스트레스다” 등과 같은 층간 담배 냄새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 100건이 넘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지난 27일에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주민이 붙여놓은 협조문이 온라인 커뮤니티상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협조문을 쓴 주민은 자신의 집 호수를 공개하며 “저희 집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운다”며 “저희 집에서 제가 피우는 거니 그쪽들이 좀 참으시면 되잖나. 내 집에서 내가 피우겠다는 데 뭐가 문제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적반하장이다. 차라리 창문을 닫고 피워라” “나도 흡연자지만 아파트에 살면 깨끗하게 관리해 줘야 하는 게 기본이다” “지 집에서 필 거면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라”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유지 흡연 못 막는 ‘금연아파트’...해묵은 갈등으로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도 공동주택 내 흡연으로 인한 갈등은 꾸준히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4년 1월부터 2016년 5월까지 국민신문고 등에 접수된 층간소음 및 간접흡연 민원 총 1,196건 중 간접흡연은 688건(57.5%)으로, 층간소음 508건(42.5%)보다 많았다. 

국립환경과학원 발표한 ‘실내 흡연과 미세입자 거동 특성 연구’를 보면 아랫집에서 흡연 시 오염 물질은 5분 이내에 윗집과 아랫집으로 퍼진다. 담배 2개비를 피우면 미세먼지가 20시간 뒤에 가라앉지만 10개비를 피우면 하루가 지나도 가라앉질 않는다. 상황이 이렇지만 공동주택 내에서 담배를 피워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정부는 실내 흡연으로 인한 공동주택 입주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2016년 9월부터 전국에 ‘금연아파트’ 제도를 시행한 바 있다. 금연아파트 제도란 입주민 절반 이상이 동의하면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의 복도, 계단, 승강기, 지하주차장 등 공용 공간의 전부 또는 일부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세대 내에서 대부분의 흡연이 이뤄지는 베란다, 화장실 등 ‘사유지’에서의 흡연은 막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단지 내 흡연에 대한 단속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금연아파트 제도 첫 시행 후 2019년 상반기까지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전국의 공동주택은 2,345곳에 이르지만, 흡연으로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는 총 44건에 불과하다. 

(사진=국민권익위원회 블로그)(사진=국민권익위원회 블로그)

금연아파트 제도의 실효성 의문이 제기되자 국토교통부는 2017년 입주자의 신고를 받으면 공동주택 관리 주체가 가구에 들어가 계도할 수 있도록 하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그러나 민원 발생 시 경비원이나 아파트 관리소 직원이 직접 가구에 들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이들에게 문제를 떠넘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접흡연 피해 민원인들은 아파트를 공공의 영역으로 보고 금연 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익위가 ‘국민생각함’을 통해 조사한 결과 간접흡연을 경험한 민원인의 63.6%가 ‘실내 금연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동주택인 만큼 무분별한 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와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금연아파트를 늘리고, 단속 체계를 보강하는 등의 정책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뉴스포스트 와의 통화에서 “실내 흡연 시 외부로 공기를 빼는 것이 아닌 자체 필터 장착으로 실내공기를 빨아들인 후 필터에 통과시켜 다시 배출하는 방식도 있다”며 “하지만 이런 강제 흡기는 효율이 떨어지고 비용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구조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 설비를 설치하면 되지만 현실적이지 않아, 이웃 간의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